[2607] 식빵과 찐빵

[한재 신충우 파일 2607]


  

식빵(loaf bread)

광의로는 식사 때 내놓는 빵으로,

찐빵도 이 범주에 속한다.

나라마다 그 규정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식빵이라 하는 것은

틀에 넣어 구운 흰 빵으로,

증기로 쪄서 만든 찐빵과는 구분된다.

 

식빵에는

윗면을 자연스럽게 부풀려 만든 open top bread

뚜껑을 덮어 평평하게 구운 pullman bread가 있다.

또 배합에 따라 설탕, 우유, 유지를

거의 첨가하지 않은 저배합(lean type) 식빵과

이들을 많이 첨가한 고배합(rich type) 식빵이 있다.

대체적으로

전자는 토스트용이고

후자는 샌드위치용이다.

빵은 밀가루, 이스트, , 소금을 주원료로 해

반죽하고 발효시킨 뒤 익힌 것이다.

 

식빵은 먹다는 의미의 한자 식()

외래어로 시작해 이제는 전 세계 공용어가 되어버린

포르투갈어 이 합쳐진 일본식 명칭이다.

유럽의 거친 밀 대신,

영국이 캐나다의 값싸고 질 좋은 신대륙의 밀가루로

부드러운 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식빵의 시초다.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국내의 식빵들은

일본 스타일로 개량된 식빵이 그 원형이다.

메이지 시대에 영국으로부터 전해진 기술로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점차 재료의 배합을 달리하고 식감을 개선하면서

일본 스타일로 변형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식빵보다는 찐빵을 더 좋아하고

아내는 반대로 식빵을 더 좋아한다.

속에 팥소 등을 넣는 찐빵은

오븐을 쓰지 않고 증기로 쪄서 만든 빵으로,

전체가 부드럽고 입맛이 좋기 때문에

구운 빵보다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식은 후의 노화가 빠르고

또한 수분이 많아 부패하기 쉽다.

 


<여행작가 한재 신충우>

by hanjae | 2019/05/23 22:39 | 기본테마 | 트랙백 | 덧글(0)

[2606] 전대협이 전국에 살포한 ‘문노스’

[한재 신충우 파일 2606]

  


사회주의 강성대국으로

함께 갈 준비가 되셨습니꽈?”

 

문재인 대통령을 조롱하는

삐라 문노스523일 전국에 뿌려졌다.

무노스는

영화 어벤저스의 캐릭터 타노스

문재인 대통령 사진을 합성한 삐라이다.

   

삐라 앞면에는 문 대통령을 타노스와 합성한 사진과 함께

사회주의 강성대국으로 함께 갈 준비가 되셨습니꽈?’라는 문구가 써있다.

타노스는 어벤저스에 나오는 악당으로 우주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강한 힘을 가진 아이템인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우주의 생명체 절반을 없애려 한다.

 

 

전대협이 살포한 문노스앞면<출처> 전대협/매일경제

 


삐라는

탈원전, 공수처,

연동형 비례제,

주한미군철수 등을 인피니티 스톤에 비유해

문 대통령의 주요 정책을 비판했다.

 

전대협이 살포한 문노스뒷면<출처> 전대협/매일경제

 

 

삐라 뒷면에는

남조선 개돼지 인민들에게 보내는 삐-라는 제목으로

삼권분립 붕괴가 얼마 남지 않았고

종전선언을 통해 주한미군을 몰아내자는 내용이 담겼다.

 

이 전대협은 보수 성향 청년단체로,

1987년 결성됐다가 해체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와는 다르다.

전대협 측은 이날 오전 서울, 광주, 부산 등 전국 주요 도시에

삐라 10만 장을 뿌렸다고 밝혔다.

 

이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이다.

 


<민주화유공자 한재 신충우>

by hanjae | 2019/05/23 16:49 | 기본테마 | 트랙백 | 덧글(0)

[2605] 방앗간이 있던 양청모랭이

[한재 신충우 파일 2605]



  

모랭이라는 말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나의 고향에는 양청모랭이기 있는데

이곳에는 방앗간과 주막이 있었고

장에 갈 때도 그곳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입에 달고 사셨다.


이를 축약해

양청모리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양청모랭이 신충우, 2019

 


모랭이는 충청도 방언으로

모퉁이를 말한다.

모퉁이

구부러지거나 꺾어져 돌아간 자리를 뜻한다.

산모퉁이의 휘어 둘린 곳은

모롱이라고 한다.

 

사내도 이젠 거의 마지막 산굽이를 돌아들고 있었다.

선학동 쪽으로 길을 넘어설 돌 고개 모롱이가 눈앞에 있었다.”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에 나오는 문장이다.

 

다시 정리하면

산의 한 귀퉁이가 모퉁이이고

그 모퉁이의 휘어진 부분은 모롱이가 되는 것이다.

 

 

<여행작가 한재 자연경 신충우>

by hanjae | 2019/05/19 10:10 | 기본테마 | 트랙백 | 덧글(0)

[2604] 부부는 일치가 아니라 조화

[한재 신충우 파일 2604]




  

첫째, 인내하며 다툼을 피하라.

둘째, 칭찬에 인색하지 말라.

셋째, 함께 기뻐할 일을 만들라.

넷째, 서로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라.

 

김창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부부 치료는 가장 어려운 정신치료 중 하나라며

제시한 “70년 부부생활을 위한 사계명이다.


   

목각 오리부부©신충우, 2019



521일은 부부의 날이다.

가정의 달인 5월에,

(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래서 521일이다.

 

니가 보고 싶어 널 만나게 됐고

니가 좋아 널 사랑한다

죽고싶을 정도로 슬픈일이 생겨도

변함없이 사랑하게 해주오

우리둘의 만남에 끝은 있겠지만

그날까지 너를 아끼며

아까운 시간들을 바보처럼 보내며

우린 그렇게 살지 않겠다

이 넓은 세상에 수많은 사람중에

널 만난건 내겐 너무 특별해

둘이 하나될수 있도록

둘이 하나될수 있도록

어떤 현실도 서로 참아낼수 있어

너 없는 이 세상은 생각할수도 없어

내 목숨만큼 널 사랑해

 

너의 가슴속이 마르지 않도록

사랑의 물을 너에게 준다

머뭇거리는 동안 세월은 지나간다

너를 사랑할 시간도 없이

세상 살다보면 현실이 힘들어서

말다툼에 상처도 받지만

둘이 하나될수 있도록

둘이 하나될수 있도록

어떤 현실도 서로 참아낼수 있어

너 없는 이 세상은 생각할수도 없어

내 목숨만큼 널 사랑해

 

둘이 하나될수 있도록

둘이 하나될수 있도록

어떤 현실도 서로 참아낼수 있어

너 없는 이 세상은 생각할수도 없어

내 목숨만큼 널 사랑해

 

김중환 작사 작곡의

부부의 날 노래 둘이 하나되어이다.

   

부부(夫婦)라는 관계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다.

흔히들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지만

부부 관계는 서로가 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른 점들을 조화시켜

개인으로서, 부부로서

발전해 나아가는 것이다.

일치(一致)와는 달리 조화(調和)

서로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데서 출발한다.

 

부부의 날은 1981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결혼기념일을 한국식으로 바꾼 것이다.

 

부부의 날 선물로는

시들지 않고 향기가 좋은

비누꽃이 가장 인기라 한다.

 

<여행작가 한재 자연경 신충우>

by hanjae | 2019/05/18 14:28 | 기본테마 | 트랙백 | 덧글(0)

[2603] 1980년 공식기록을 통한 김용장은 누구인가?

[한재 신충우 파일 2603]


 

 

경향신문 516일자에 실린 의미있는 기고문이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문판 번역자 설갑수씨가

미 육군 정보요원김용장이 답해야 할 의문들이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이 바로 그것으로 의미있는 의문제기이다.

1980년 당시 공식기록을 통한 김용장은 누구인가?

<1980년 해직기자/ 저술가 한재 신충우> 

 


[기고] ‘미 육군 정보요원김용장이 답해야 할 의문들.


 

설갑수 번역가 <출처> 경향신문



최근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둘러싼 정보요원 두 명의 주장이 파장을 낳고 있다. 19805월 미 육군 501 정보그룹 소속 군사정보 전문가로 광주 공군기지에서 근무했다는 김용장과 광주 주재 501 보안사 상사였던 허장환이 논란의 중심이다.

김용장은 꿈같은 증인이었다. 헬기사격부터 사살명령까지 5월의 모든 의문에 완전한 답변을 내놨다. 그 답변은 허장환의 주장과 일치한다. 다만 보안사 요원 신분이 확인된 허장환과 달리 김용장의 신분은 자신의 주장 외엔 증거가 없다.

김용장이 501그룹 시절 받은 포상은 그가 501그룹 종사자였음을 증명할 뿐 광주에서 군사정보 전문가로 일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보안상 직책을 명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개된 501부대의 두 상급기관, 육군 정보보안사령부(INSCOM)와 국방정보국(DIA) 문건에서 광주 근무 한국인 정보전문가의 흔적은 찾기 힘들다.

증언의 정확성도 문제다. 김용장은 지난 13일 국회에서 1980년 광주에 CIA나 국무부 직원이 없었다고 했다. CIA 요원 상주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광주에는 국무부 소속 미 문화원이 있었다. 미국의 5·18 초기 정보는 문화원 직원들의 작품이었다. 20년 넘게 광주의 미 육군정보 요원이 이들의 존재를 모를 수 없다.

김용장은 지난 14일 광주 회견에서 1980521일자 DIA 문건 중 3개 문항이 자신의 보고에 기반했고, 그중 하나는 사살명령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그것은 사살명령이 아니라 자위권 허가였다. 사살명령의 존재 여부를 떠나 이 보고서에 대한 김용장의 증언은 보고서와 천양지차인 것이다.

김용장은 이 회견에서 80년 당시 501의 기능이 여단에서 그룹으로 축소됐다고 말했다. 사실이 아니다. 대북 감청이 주임무인 501부대는 1986년 여단으로 승격돼 지금도 평택에 주둔하는 등 축소된 적이 거의 없다. INSCOM1980년 연례보고를 보면 그의 증언과는 반대로 휴민트 구조는 계통이 강화되고 인원도 늘었다.

연례보고에서 한국인 전문가의 흔적도 찾기 힘들다. 당시 501그룹에는 미군 194, 직접고용한 민간인은 고작 두 명이었다. 그중 하나가 김용장이었을까. 그러한 특기자가 굳이 광주 공군기지에 20년간 배치됐을까? 게다가 당시 501부대 배치는 광주를 제외한 5개 기지에 한정됐다.

5·18 관련 DIA의 최초 보고서는 519일에 나왔다. 그날 광주시내에서 시위를 목격한 2명의 미 공군장교의 목격담으로 구성됐다. 정보장교가 아니었던 이들이 기지 귀환 후 심상치 않은 시내 상황을 미 공군 정보체계에 보고했고, DIA가 이를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보고는 520, 광주 관광호텔 외국인 투숙객들과 선교사로 보이는 미국인들을 면담한 뒤 작성한 것이다. 이 초기 문건들에서 한국어에 능통한 정보전문가의 흔적은 없다.

김용장은 지난 3JTBC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그는 취재진에게 1980년 당시 미대사관 무관 제임스 영과 교류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달 같은 취재진을 만난 영은 김용장을 모른다고 했다.

그즈음 나는 INSCOM에 당시 김용장과 4명으로 구성된 그의 팀이 작성한 보고서의 정보공개를 요청했고, 그런 기록을 찾을 수 없으나 DIA나 태평양사령부에 남아있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 후 두 기관에 정보공개 요청을 했으나, 한 곳에선 기록이 없다는 답을 받았고, 다른 한 곳에서는 답신이 아직 오지 않고 있다.

김용장과 허장환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5·18 역사를 민주화항쟁이 아닌, 사전 각본에 따라 연출된 학살극으로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 광주시민들이 한 무리의 나약한 피해자로 전락하더라도, 그것이 진실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엄중함에 비춰 김용장은 1980년 당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공식 기록을 통해 밝히지 않고 있다.

항쟁과 학살이 뒤얽힌 광주는 민주주의의 큰 성과이지만 민초들에겐 깊은 상처다. 온갖 혼란과 몽니 속에 진상규명은 요원한 채, 5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있다.

 

설갑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문판 번역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161603001&code=990100#csidx64b45216788e2b2b29098cd2c486510



by hanjae | 2019/05/17 19:41 | 기본테마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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